고린도전서 14장 주석 : 은사와 바울의 여성 평등에 대한 본문의 오해
고린도 교회라는 콘텍스트와 은사에 대한 바울의 입장
바울은 모든 은사가 동등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서로 비교하고 있다(14:4,5). 그러나 이는 은사 그 자체를 비교한다기보다는 은사가 행해지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인 파급효과만을 염두에 둔 말이다. 즉 방언은 개인에게만 유익하고, 예언은 공동체에 유익하다. 왜냐하면 방언은 번역되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방언과 고린도전서에서 묘사되고 있는 방언은 다른 방언임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방언은 명확하게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어 외국어를 할 줄 안다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반면에, 고린도 교인들이 하는 방언은 개별적이고 내밀하며 주관적인 언어였다(14:11'외국어-야만적인 것barbaros') . 이러한 방언의 주관적인 특성은 예배에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14:40에서는 예배 가운데 질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개인의 기도과 영성에만 유익한 방언을 타인들에게 자랑하듯,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예배라는 공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원래의 그 목적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견지하지 못한 채 이것을 하나의 개인적인 능력, 재능으로 착각하여 정치적 힘싸움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바울이 그렇다고 해서 방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14:39). 이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영적인 작용이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13:8-10에서 바울이 방언을 폐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은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방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치적 힘싸움, 자랑, 교만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을 나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방언은 하나님의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의 명분으로 삼을 수 없다.
바울이 주장하는 복음은 여성 불평등?
고린도전서 14장 34절-35절은 예전부터 의견이 분분했던 본문이다. 이러한 본문과 한국의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떤 권위적인 교회들은 이 본문을 어떠한 여과없이 그대로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심지어 몇몇 교단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안수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4: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14: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그러나 '여성'과 '남성'을 의도적으로 나누고 불평등화시키는 것은 바울의 복음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 본문은 무엇인가? 14:34의 "교회에서"는 현대 교회와는 다르게 바울의 시대에서는 특정 장소 없이 '예배'를 위하여 모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에서'라는 말은 '예배 중에'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즉 '여자는 예배 중에 잠잠하라.'는 뜻인데, 예배 중에 말하는 것은 '설교'하는 것이다. 1세기의 시대적 정황에서 이 텍스트는 '설교'가 아닌 '예언'일 가능성이 있다. 즉 여자들이 예배할 때 설교, 혹은 예언했을 정황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이 여성들의 영적 활동을 억제하려는 듯한 텍스트를 남겼는가?
헬라어에는 인용구를 지칭하는 어떤 언어적 부호가 없다. 즉, 생략된 언어적 부호가 있었고, 바울은 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오히려 그것을 다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자는 집에서 남자에게 물어봐라"는 바울의 가르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만일 바울이 예배 중 여성의 활동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여자"라는 애매모호한 명사보다 "내가 언제 그들에게 설교할 발언권을 주었느냐"와 같은 보다 구체적인 정황을 가리키는 텍스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린도 교회는 예배 중에 성령의 은사에 따라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만일 바울이 예배 중 은사의 사용을 남성에게만 허락했다면, 12, 13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과 남성의 우월성에 대하여 다루었을 것인데 아무런 맥락 없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즉, 3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에서 '너희'는 여성 예언자가 아닌 여성 예언자를 핍박한, 바울이 인용한 텍스트의 원래 발화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복음과 모순되게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아닌, 여성 예언자를 핍박하는 다른 대상들을 질책하고 오히려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사람이면 예언할 수 있도록 권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