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주석 : 사도에 대한 이해와 부활에 대한 믿음
바울은 여러 본문에서 자기 자신을 사도로 소개한다. 그러나 원사도들, 다시 말해 예수의 열 두 제자는 예수와의 역사적 접점을 강조하며 자신들만이 사도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도에 대한 다른 이해가 생겨나고, 바울과 원사도들 사이의 갈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갈등은 로마서에서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지만(로마서의 콘텍스트 때문에), 갈라디아서 2장이나 고린도전서 15장, 사도행전 10장 등에서 이 갈등을 볼 수 있다.
사도에 대한 다른 이해
원사도들은 역사적 예수와의 접점을 강조했다.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 10:41)"에서 원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식사한 것을 이유로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했던 제자들만으로 사도의 대상을 제한하여, 사도권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더라(행 1:3)"에서 40일이라는 기간을 제한함으로써 예수가 특정 인물들에게만 한정되게 사도직을 부여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즉,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역사적 접점을 사도직의 조건으로 강조했고, 바울은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반면 이 조건에 부합할 수 없는 바울은 다른 사도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빌립보서 2:25에서 에바브로디도를, 고린도후서 8:23에서 디도를, 로마서 16:7에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에게 '사도'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신실한 일꾼"이다. 즉, 역사적 예수와의 접점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사도인 것이다(고린도전서 1:17). 바울은 이런 사도이해를 가지고 원사도들과 충돌한다. 고린도전서 15:9에서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라고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사도직이 과분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러한 과거의 문제로서만 내 사도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즉 이런 과거가 없으면 내가 사도직을 받아도 문제 없다는 수사학적 의도로 보아야 한다.
부활에 대한 믿음
하지만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목격자 명단을 제시하며 역사적 예수를 강조한다. 바울의 사도이해가 역사적 예수와는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15장에는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활의 역사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자신의 사도권을 희생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의심했던 것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된 배경은 그리스도가 아닌 일반 인간이 부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보편적인데 반해 부활은 경험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으니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믿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포함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 인간들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똑같이 믿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합리적 의심은 분명 올바른 신앙을 위한 덕목이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믿음 중 하나이다. 그것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이성이나 과학으로 증명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활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성이 아닌 영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