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서학

고린도전서 9장 주석 :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바울의 숙명(아난케)

φιλοσοφία 2025. 1. 9. 03:08

우리는 9장 2절과 3절에서 바울을 비판하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의 숙명과 권리의 포기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동역자됨을 권면하고자 했다.

 

권리의 포기

     바울은 4절부터 11절까지 권리의 포기를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이 먹고 마실 권리, 아내와 동행할 권리,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권리, 교회의 후원을 받을 권리(6-11절) 등을 모두 포기했다고 말한다. 특별히 바울은 9절에서 신명기 25장 4절을 인용하며 농사짓는 소와 자신을 비교한다. 하지만 구약 본문의 맥락은 이것이 아니다. 구약 본문의 맥락은 한낱 미물도 박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따뜻함에 대한 본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 신명기의 맥락을 희화화한다. 자기 자신을 소로 비유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토록 권리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남을 서슴없이 공격한다. 당장 내가 너무 불안한데 타인을 먼저 살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신을 하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의 내면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고 여린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겉모습을 부풀리고 타인에게 먼저 공격적으로 대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같이 진정으로 남을 돕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크고 강하고 넓기 때문에 타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 또한 이런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기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는다. 즉, "나는 이렇게 권리를 포기하는데 다른 사람들이나 너희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복음과 상(품삯)

 

     심지어 바울은 자기가 권리를 포기한 일이 전혀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이나 고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정말 상반되는 말씀이다. 우리가 가난과 고난을 자랑하는 마음 속에 어찌 심리적 이득이 없겠는가.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이것이 나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γὰρ ἐὰν εὐαγγελίζωμαι, οὐκ ἔστιν μοι καύχημα, 
γάρ ἀνάγκη μοι ἐπίκειται· γάρ οὐαὶ μοί ἐστιν ἐὰν μὴ εὐαγγελίσωμαι.

 

바울은 이러한 권리의 포기를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숙명(아난케 ἀνάγκη )이자, 상(품삯 μισθός )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내가 자랑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것은 이것이 나의 아난케,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숙명 때문에 내 자유가 박탈당해서 내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 또한 바울의 상은 '권리의 포기'이다.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복음에 참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