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독론 (로마서, 빌립보서, 고린도서)
바울의 기독론은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포를 듣고 이방인들의 회심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인격과 신성을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서신에서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우리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몇 가지 본문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본문이 바로 빌립보서 2장, 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8장, 15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에서 또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로마와 고린도교회에 전달하는 서신의 콘텍스트(즉, 케리그마, 이방인 선교, 유대인 크리스천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 등)와 관련되어 있다.
빌립보서 2장과 최초의 고기독론
빌립보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는 원시 기독교의 전승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노래의 형태로 원시 기독교에 유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바울은 다른 크리스천들이 이야기했던 전승을 그대로 채용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40년대에 이런 내용을 가진 전승과 노래가 퍼져있었다는 것, 바울 이전에 고기독론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인 유대인들은 예수가 죽고 15년만에 예수가 신이라는 노래를 부를 정도로 고기독론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이 주장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최초의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고기독론을 전개시키기 위해 높은 학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어떤 글이나 정치적 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증명하는 문서나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기독론을 교리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한편 바울의 회심은 점진적인 지식의 습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계시와도 같은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회심 사건이 있다고 해도 기독론을 정교한 수사학적 문체와 선교 활동으로 전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바울이 회심 이후 고기독론을 교리적으로 발전시키기까지, 그리고 바울이 기독교의 교리를 확립하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개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바울 이외에 초기 유대인 크리스천들 중 고기독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없었다. 최초의 신약 정경이 바울의 서신들이라는 점을 미루어보아, 바울이 기독론을 정교하게 전개시킨 최초의 사람이었다.
로마서 5장과 고린도전서 15장, 아담과 그리스도
로마서 5장 또한 이러한 사실의 근거가 되는 본문으로서 볼 수 있다. 로마서 5장12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이 본문은 죄의 기원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에 의해 최초로 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아담이 인간의 원형, 인간의 한 형태로서 모든 인간이 아담과 같이 죄를 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시키는데, 이러한 대비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행적이 아담처럼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의 결론은 “죄가 넘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카리스마가 아담의 커다란 영향력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바울 자체는 그리스도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기보다는, 구원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를 부수적으로 소개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로마서와 또 다른 차이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본문은 율법과 죄를 그리스도와 대비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와 다르게 율법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에는 갈라디아교회나 로마 교회에서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립 구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창조의 능력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이 다음과 같은 콘텍스트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보자: 지혜와 지식에 대한 추구를 가지고 있는 고린도교인들이, 이성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다는 정황이 있다. 따라서 바울은 15장에서 부활의 목격자들의 명단을 제시하고, 부활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활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활을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과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또한 바울은 예수의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고, 다만 그의 부활을 믿으라고 권면한다. 이 본문 또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믿음을 권면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서신들에서 바울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예수에 대한 믿음과 케리그마를 위한 장치로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빌립보서 2:6-11, 고린도전서 8:4-6을 통해 바울이 고기독론을 견지했으며, 최초로 고기독론을 발전시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