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핵심개념 (4) : 전이 저항
전이와 전이 저항
이 글은 전이의 개념과 전이 저항에 대하여 서술한다. 정신분석에서 전이와 전이 저항은 실제 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이는 무엇이며, 전이가 어떻게 저항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그리고 분석가는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상담실 안에서 전이가 일어나는 이유
앞선 글에서 <전이>의 개념에 대하여 다루었다. <전이>란 심리적 현상으로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대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 <현재의 대상>에게 "전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 어른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이 감정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사랑뿐만이 아니라 증오나 분노로도 나타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이는 자신의 경험과 무의식적 감정을 통해 현재의 객관적인 대상을 왜곡하고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와 자기 자신의 전이 감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부부끼리의 진정한 사랑과 공감도 이루어지기 힘드며, 특별히 상담자는 내담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이 감정은 상담실에서도 나타난다. 왜 그럴까? 일단 내담자는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실을 찾는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보통 내담자의 무의식적 콤플렉스나 감정, 잘못된 신념이나 인지구조 등에 의해 일어난다. 때문에 상담자는 그러한 무의식적 충동이나 감정으로부터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담자와의 신뢰관계가 허락하는 한, 내밀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조심스레 던진다. 내담자는 상담이 지속될수록 갈등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 자기 자신의 전체적인 삶에서 반복되었던 갈등, 무의식적 감정과 콤플렉스를 고백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것을 꺼내는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무의식적 대상을 눈 앞에 있는 분석가와 혼동할 수 있고, 전이가 발생할 수 있다.
무의식적 충동은 기억되지 않으려 한다. 대신 그것은 무의식의 무시간성과 환각 유발 능력에 상응하도록 자신을 재생산하려 한다. 환자는 그의 무의식적 충동이 일깨워져서 생긴 결과를 꿈에서와 같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열정을 현실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실연하려 한다. (프로이트, <전이의 역동에 대하여>, 43)
따라서 전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분석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이다. 분석가 내담자의 신뢰 관계를 통해, 무의식이 건드려지지 않는다면 전이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 전이는 신뢰관계의 지표다. 그러나 동시에 내담자가 일반적이지 않을 정도로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부정 전이의 일종일 수 있다.
두 번째로, 전이는 정신분석 치료의 저항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이가 치료의 저항이 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전이 저항
분석가와 내담자는 자유연상을 통해 환자의 무의식을 탐구하려 하는데, 이는 억압되어 퇴행된 리비도를 해소하는 일이다. 이는 반드시 저항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무의식적 콤플렉스는 수치스럽거나, 외상적이기 때문에 억압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연상은 말 그대로 누워서 머리에서 연상되는 것을 가감없이 매우 솔직하게 곧장 분석가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 때문에 내담자는 "아,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떠오르는 연상의 내용을 생략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이때부터의 자유연상과 상담자에 대한 고백의 말들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오지 않는다. 내담자의 고백과 자유연상은 언제나 저항의 눈치를 보며, 무의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요구와 저항의 요구 사이의 타협으로서 나온다. 이 지점이 바로 전이가 생겨나는 지점이고, 이렇게 나온 전이는 하나의 저항이자 신경증으로서, 아주 강렬하고 완고하게 작용하며 분석 치료를 방해한다.
이제 우리가 병인이 되는 콤플렉스를 의식에서 그것의 대리물에서 무의식에서의 그것의 뿌리로 추척해가다 보면 곧 저항이 아주 뚜렷하게 세력을 누리고 있어서 다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 저항을 고려하게 되어 저항의 요구와 탐색 작업의 요구 사이의 타협물로 나타나는 지역에 도달하게 된다. 경험에 의하면 바로 여기가 전이가 생기는 곳이다. 만약 콤플렉스의 재료 중 어떤 것이라도 의사라는 인물에 전이되기에 적당하다면 그런 전이가 만들어진다.(프로이트, <전이의 역동에 대하여>, 36)
전이가 생겨난 이후 내담자는 상담자를 하나의 무의식적 대상으로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나 충동, 콤플렉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언어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를 대상으로 그러한 충동이나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시도한다. 무의식적 콤플렉스는 말해지고 기억되기보다 증상으로서 실연되려고 하는 성질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실 안에서의 전이는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저항으로서 기능한다.
한편 전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경증인데, 무의식은 전이를 활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전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분출하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내담자의 무의식은 전이를 통해 훨씬 능동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고, 욕구를 방출하며 무의식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 전이는 신경증이면서 일반적인 신경증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다. 따라서 전이가 발생되면 내담자의 불안이 해소된다. 억압된 욕구가 방출되기 때문에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전이를 통해 쾌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전이 분석
그러나 전이가 과연 상담에서 나쁜 일일까? 전이가 발생해서 내담자가 솔직하고 이성적인 고백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말한다고 해서 나쁜 일일까? 전이는 오히려 상담자의 자료가 된다. 즉, 환자는 전이를 통하여 저항하지만, 동시에 전이를 통해 자신의 숨겨진 충동을 드러낸다. 상담에서 전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상담자와 분석가는 전이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전이 현상을 제압하는 것이 정신분석가에게 가장 어렵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환자의 숨겨지고 잊혀진 사랑 충동을 활성화하고 드러나게 하는 데
더없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로이트, <전이의 역동에 대하여>, 44)
그렇다면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전이 분석이나 정신분석은 무의식적 콤플렉스를 내담자에게 직면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콤플렉스와 외상적인 감정들을 이해하고 소화하고, 감정들을 처리하고, 말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전이 상황을 내담자에게 직면시킨다면 중요한 단서가 되는 전이의 내용과 충동들은 다시 무의식 깊은 곳으로 숨어버릴 것이다. 절대 환자에게 전이의 내용을 알려줘서도, 직면시켜서도 안 된다.
전이를 이용하기 위해 우선 상담자는 자기를 분석하고 그 내담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야한다. 왜냐하면 상담자 또한 전이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자 자신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외상적인 기억이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내담자에게 전이될 수 있다. 이를 역전이라고 한다. 상담자 자신도 역전이에 빠져버린다면, 상담은 더 이상 이성과 이론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무의식적 충동에 의해 맡겨져버린다. 따라서 역전이 감정들을 느끼고, 그 속으로 들어가 이해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상담자가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고 내담자를 인내심있게 기다리고 지켜봐준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담자의 적절한 해석과 질문이 있다면, 내담자는 언젠가 자기 자신의 충동과 행동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