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로이트의 논문 "편집증 환자 슈레버"를 통하여 망상증, 즉 편집증의 원인과 기제에 대해 서술한다. 슈레버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병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집증에 대한 논문은 프로이트가 여타 사례들처럼 직접 환자를 분석하며 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 정신병 환자는 정신분석 상담 클리닉에 오지 않고, 보통 정신병원에서 약물처방을 주로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로이트는 슈레버를 단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그는 슈레버가 자신의 망상에 대하여 쓴 자서전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보고 슈레버를 분석한다.
한편 슈레버는 고등법원 판사직을 지낼 정도로 사회적인 지위와 학식이 높았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주는 강한 약물을 복용할때 조차 피아노를 치고 독서를 하는 등 여타 환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정신병원 안에서 판사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는 항소문을 제출하여 훗날에는 판사로 복직한다. 즉, 슈레버는 한창 편집증적 망상에 빠져있을 때에도 일상생활과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이성이 완전히 살아있었다. 어떻게 이런 교양있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 말도 안되는 망상을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의 망상에 대한 책까지 쓰게 되었을까?
슈레버의 증상과 편집증의 내용들
환각을 근거로 한 피해망상이 이미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중략)...그의 망상은 점점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또 자기를 괴롭히고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전에 그를 치료했던 의사 플렉지히였다. 그는 플렉지히를 <영혼을 죽이는 자>라고 불렀다.
<그는 자기가 세상을 구원하여, 잃어버렸던 천국의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우선 여자로 변형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여자로 변형되기를 바란다고 추측하면 안된다. 이것은 ⟪만사의 법칙⟫에 따라 ⟪그래야만⟫되는 일에 속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115)
슈레버는 1884년 가을 처음 발병을 하고, 6개월 동안 플렉지히의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1885년 퇴원한다. 이때 슈레버가 받은 진단명은 프로이트에 따르면 <심기증>이었다. 8년 후 1893년 6월 슈레버는 재판장으로 임명되고 같은 해 10월에 두 번째 병이 난다. 그의 병은 처음과 같이 심기증으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 이것이 박해망상으로 변형되면서 편집증의 형태를 띠었다. 그러면서 그의 망상은 종교적으로 변했는데, 자신이 세상의 구원자이고 플렉지히는 자신을 박해하는 ‘영혼 살해자’라는 것이었다. 그의 망상은 세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편집증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망상인 '박해망상'과 ‘구원자 망상’,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망상이다.
슈레버는 자신은 거세 망상과 구원자 관념이 연결되어, 자기가 거세를 감수할 수 있게 된 것을 1895년 11월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 만사의 법칙은 내가 좋아하든 말든 나의 거세를 꼭 필요한 것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나에게는 여자로 변형된다는 생각을 받앋르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신성한 빛살에 의해 잉태하는 것만이 내가 거세된 결과로 생기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몸과 신경으로 되어 있지만 신은 그 속성상 오직 신경으로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같이 신경의 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무한하다. 그들은 인간이 가진 신경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 강도는 엄청나게 강하다. 그들의 창조적 역량을 말할 때는 그들은 빛살이라고 일컬어진다. 신은 세상의 창조를 끝내고 아주 멀리 떨어져서 세상이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신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일만 하였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신은 매우 재능 있는 특별한 사람들과 직접 관계를 맺거나, 기적을 통해 세상의 운명에 간섭했다. 신은 만사의 법칙에 따라 인간이 죽기 전에는 그들의 영혼과 대화하지 않았다. ...(중략)
계속해서 그의 망상을 살펴보자. 여러분들은 이 모든 망상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고, 단지 편집증이 대충 어떤 것인지 느낌만 알면 된다. 이 망상들 중 정신분석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박해망상'과 '여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망상이다.
슈레버의 책 전체에 걸쳐 신이 죽은 자와 대화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산 자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평이 가득 차 있다. …신이 산 자를 오해했기 때문에 신 자신이 슈레버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데 가담할 수 있었고, 또 슈레버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그로 하여금 심한 고통을 치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강렬하게, 이것은 단지 삽화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선언해야겠다. 이것은 여하튼 내가 죽으면 끝이 날 것이며, 따라서 오직 나만이 신을 조롱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은 전능하신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며, 그들의 구세주이시며 그들의 예베와 공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다.>
...(중략) 공경하는 태도와 반항하는 태도가 뒤섞여 나타나는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천국과 같은 행복의 상태는 본질적으로 땅에서 누리는 관능적인 즐거움이 강하게 지속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발병 전에 그는 성적으로는 금욕주의자에 가까웠고, 신에 대해서는 회의론자였다. 그러나 발병 후에는 신을 믿었고, 또 관능적인 것에 열광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얻은 신앙심은 특이했고, 자기를 위해 얻은 성적인 즐거움도 마찬가지로 아주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로서 성적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여자의 성적 감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신에 대해 여성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자기가 신의 아내라고 느꼈다.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122-133)
해석 : 박해망상, 자신이 여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망상과 동성애적 리비도
그렇다면 이러한 망상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슈레버는 이를 왜 믿지 않을 수 없었을까?
자서전을 읽었을 때 그는 ‘여자로 변화된다는(즉 거세된다는) 망상’이 ‘구원자 망상’보다 먼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적 피해 망상이 구원자 망상으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발병 전 고등법원 판사 슈레버는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고, 동성애따윈 그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처음에 자신이 여자로 변형되는 꿈이나 충동 등이 올라올 때마다 격분하여 자신을 박해하는 자가 꾸민 음모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동이 박해망상에서 종교적 망상으로 변형되어 결국 자신의 충동과 화해한다. 그의 망상에서 그는 자신이 신과 관계할 때, 그리고 천국의 행복을 ‘관능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신과 관계할 때 자신을 신의 아내로 느꼈으며, 관능적인 행복을 느꼈다. 그는 이것을 종교적 신앙심으로 생각하여 전혀 부당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식으로 신에 대해서 섬기고 공경할 뿐만 아니라 아주 반항적인 태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즉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슈레버의 망상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나오는 박해 대상, 혹은 사랑하는 대상은 플렉지히와 신이였다. 플렉지히와 신은 슈레버에게 어떤 무의식적 의미를 가질까? <전이>는 환자가 의사에게 존경심을 표하거나 애정을 가지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준다. 환자는 의사를 보고 자신의 무의식적 대상을 끌어와 의사에게 대입시키며 과거의 관계를 반복한다. 따라서 플렉지히를 향한 이 동성애적 리비도의 원인이 누구였는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슈레버의 아버지, 혹은 남자 형제인 것이다. 그런데 발병 전 고등법원 판사 슈레버는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고, 동성애따윈 그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처음에 자신이 여자로 변형되는 꿈이나 충동 등이 올라올 때마다 격분하여 자신을 박해하는 자가 꾸민 음모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즉 슈레버는 자신의 동성애적 충동을 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신이 이들에게 박해받고 있다는 망상을 한다. 즉 그들을 자신의 박해자로 만들어야만 자신이 그들을 미워한다는 식으로 동성애적 리비도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망상 - 피해망상은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 남자를 미워한다>고 소리높여 주장한다.
<나는 그 남자를 미워한다>는 투사의 기제로 <그 남자는 나를 미워한다(박해한다).
그래서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은 정당하다.>로 바뀐다.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미워한다. 그가 나를 박해하기 때문이다.>
관찰해 보면 그 박해자가 한때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사람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170)
그러나 박해망상이 종교적 망상으로 변하면서 슈레버는 결국 자신의 충동과 화해한다. 그의 망상에서 그는 자신이 신과 관계할 때, 그리고 천국의 행복을 ‘관능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신과 관계할 때 자신을 신의 아내로 느꼈으며, 관능적인 행복을 느꼈다. 이에 따라서 슈레버가 자신의 망상 속에 있는 신과 관계할 때 느끼는 관능적인 느낌은 더 이상 추잡한 근친상간적 행위가 아니라 종교적인 행위라고 변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거세는 이제 공포가 아니라 거세를 당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동성애적 리비도의 만족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가 여성으로 변화되어 세계의 구원자가 되는 것은 이른바 <만사의 법칙>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의식은 더 이상 자신의 동성애적 리비도를 억누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식으로 신에 대해서 섬기고 공경할 뿐만 아니라 아주 반항적인 태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즉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편집증의 원인과 기제
우리는 망상의 형성을 병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회복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우리는 억압 자체가 전에는 사랑했던 사람(그리고 사물)으로부터 리비도를 떼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끄럽게 굴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회복의 과정이다. 회복의 과정은 억압이 한 일을 되돌리고, 리비도를 자신이 버렸던 사람에게 다시 가져온다. 편집증에서는 이 과정이 투사에 의해 수행된다.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180)
강박증에서 숨기고 있는 감정은 압축되거나 다른 감정으로 변형되지 않는다. 강박증은 증상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전치된다. 반면 히스테리에서는 사랑과 증오를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증상으로 선택된다. 예를 들어 도라의 기침은 히스테리적인 전환이었는데, 그것은 키스에 대한 성적인 갈망임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혐오와 방어의 표현이였다. 마지막으로 편집증은 감정을 분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의식이 그 감정을 억압하여 압축하고 동일화했던 것을 원상복귀시키는 것이 편집증의 망상이다. 편집증에서는 그 망상이 계속해서 세분화되고 구체적으로 쪼개진다. 편집증자는 억압되었던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구체적인 망상 체계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회복시키고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편집증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일종의 회복이다. 억압된 것을 되돌려서 대상들에 투사시켜 자신의 충동과 화해하는 것, 그것이 망상이 하는 일이다. 자신의 소망을 숨기고 억압된 채로 대상들과 관계했던 슈레버는, 자신의 리비도적 환상을 만들고 그것을 망상으로 가능하게 만들면서 억압된 충동들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리비도의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외부의 대상들에게 향했던 리비도를 거두어들여 모두 자신에게 투자되는 것이다. 망상에 빠진 환자는 대상 관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리비도의 방향 전환이 신경증과 정신증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강박이나 히스테리같은 신경증은 여전히 대상에게 리비도를 투사한다. 그들은 여전히 대상을 사랑하지만, 그 감정을 억압하여 신경증이라는 타협물이 나타난다. 그래서 발달단계로 보자면 신경증이 가장 성숙한 증상이다. 왜냐하면 리비도의 수준이 대상선택의 단계에 놓여있으며, 사회적인 법이나 규율들을 받아들여 그것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신경증은 사회의 규범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보편적인 질병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 또한 모두 하나씩 조그마한 신경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우울증이나 편집증과 같은 정신증은 대상에 대한 리비도 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슈레버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망상 속에 있는 대상과만 관계했던 것처럼, 정신증 환자들은 대상에게 투자되었던 리비도를 모두 거두어들임으로써 자기 자신과만 관계한다. 정신증에서는 신경증에서처럼 현실원칙(강한 억압)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원칙이 현실원칙을 완전히 집어삼켜버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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