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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프로이트

프로이트 : 히스테리와 억압이론 (정신분석학의 탄생)

by φιλοσοφία 2024. 11. 26.

초기 프로이트 히스테리와 억압

     이 글은 정신분석학의 탄생과 초기 개념을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는 그때 당시 의학계에서 배제되었던 히스테리 환자들을 연구하며 무의식이라는 지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 설명할 히스테리, 무의식, 억압은 정신분석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 아니면 어느 심리학 저서를 읽거나 상담관련 자격증을 따고자 할 때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다. 정신분석학은 대상관계이론, 인지치료이론 등 현대 상담학과 심리학, 철학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독일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의 대부분은 의료 보험에 <정신분석치료>라는 항목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는 만큼 정신분석학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론에 대하여 구강기-항문기-남근기 등등 개론적으로만 외우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학과 무의식은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어떻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그 미지의 영역인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초기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히스테리'와 '억압'에 대한 이론을 이해했을 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정신분석의 배경

     아직 정신분석학이 세상 밖에 나오기 전, 1880년대 당시 프로이트는 빈의 젊은 신경과 의사였다. 젊은 프로이트는 프랑스에서 샤르코, 피에르 자네, 베르넹 등과 같은 정신과 의사이자 최면술사들에게 새로운 의학 기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하나의 실험이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것은 일명 '베르넹의 실험'으로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최면술사는 여자 환자에게 두 가지 지시를 했다.
"방의 구석으로 걸어가 우산을 펼치십시오",
"같은 행위를 최면에서 깨어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똑같이 하십시오."
여자 환자는 최면에서 깨어나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최면 상태에서 명령받은 바를 정확히 실행했다.
최면술사가 왜 그 행동을 했는지 묻자, 그녀는 명령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단지 그 우산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미하일 바흐찐, "프로이트주의", 58)

 

프로이트는 이 실험과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 가지 가설을 세웠다. 

1) 행위의 동기가 의식적으로 굉장히 확실해보여도 행위의 실제 이유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2) 행위는 때때로 의식에는 이르지 못하는 힘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3) 이러한 심리적 힘들은 일정한 요법을 적용해 의식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까지 읽었을 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가장 초기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의식에 이르지 못하는 힘'이 바로 무의식이다. 

 

 

 

히스테리, 억압된 욕망과 증상 발현

 프로이트는 이 실험으로부터 얻은 가설들을 당시 치료법이 없던 히스테리에 적용시켰다. 다시 말해 히스테리 환자에게는 남에게 말못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의식할 수도 없는 심리적 콤플렉스가 있으며, 그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바로 증상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면술사에게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닌 히스테리 환자들에게 어떻게 이런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있었을까? 여기서 말하는 이 무의식적 콤플렉스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욕망이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 등이 강하게 억압되어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면 안나 O라는 사례의 환자인 안나 O는 이웃집에서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병간호를 해야만 해서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안나 O는 '아버지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무의식적 욕망을 가졌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출중했던 그녀는 자신이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러한 욕망은 실현되지 못한 채 무의식에 억압되었다. 그리고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과 그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의식 사이의 갈등, 수치심, 자기 비난 등이 히스테리 증상을 발생시킨 것이다. 

 

히스테리의 치료와 카타르시스

 이러한 증상과 증상을 발생시킨 병인 관념간의 관계는 치료를 통하여 밝혀졌다. 즉, 안나 O가 자신의 증상과 관련된 사건, 고통스러운 감정과 기억 등을 의사에게 고백하면, 증상은 사라졌고 안나 O는 자유로워졌다.

 

     정리하자면 최초에 정신분석학은 대화 치료 기술로서 탄생되었다. 히스테리는 억압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신체적으로 전환되어서 생기는 증상이며, 이 억압된 감정들을 대화로 풀어냈을 때 증상은 사라진다. 물론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고 고백하는 것은 환자에게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고, 여기에는 당연히 <저항>과 <방어>가 있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인 <억압>과 <저항>은 서로 붙어 있는 개념이다. 결국 초기의 프로이트는 이 <억압된 병인 관념>을 환자가 입으로 고백하게 하기 위하여 갖가지 기술들을 사용했는데, 결국 정신분석학의 주요 기술로서 정착된 것은 <자유연상>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히스테리 환자가 소화하지 못하여 증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분석가와의 대화를 통하여 꺼내졌을 때, 증상은 완치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치료법을 체험의 의식적인 '제거'를 통해 두려움과 수치스러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용어를 빌려 '정화하다'라는 뜻의 "카타르시스"라고 명명했다. 결론적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는 이러한 <억압된> 감정이나 체험, 기억 등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이다.

 

 

 그때 의학계에서 히스테리는 "여성만 걸리는 질병"이자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질병" 이었다. 현대에 비하여 성적, 도덕적으로 굉장히 엄숙하고 보수적인 시대에, 여성 인권이 낮았던 시기에 여성들은 많은 것들을 억압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는 당시 의사들의 의학 담론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은폐되고 거부당했던 히스테리증자들의 현실들을 경험하는 가운데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다. 정신분석은 그 시초부터, 억압되고 무시된 것들, 의식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 집중한다. 정신분석에서 윤리란 무엇일까? 거대한 이데올로기, 지식의 담론, 사회적 체제 등 의식의 산물이 만들어낸 다양한 것들로부터 소외된 것들, 그 거대한 의식적 힘들이 억압해버려 밖으로 내던져버린 것들, 그것을 폭로하고 밝혀내는 것이 아닐까?

 

  이 글에서 서술된 <무의식> 개념은 오로지 정신분석학 "초기의" 무의식 개념입니다. 무의식과 정신분석 이론은 프로이트가 히스테리뿐만 아니라 강박증, 편집증, 우울증, 도착증 등을 연구하며 계속해서 발전됩니다.